약 5:7-12 기다림...

시험 가득한 세상에서 주님께서 강림하시기 까지 마음을 굳건하게 하면서 인내해야 한다. 그 인내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믿으면 그날로 인생이 확 바뀌는 것이 아니다. 교회를 출석하고 있다해도 인생의 문제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고통과 번민은 여전히 삶을 쥐고 있다. 야고보의 편지가 이런 그리스도인들에게 전달되었다. 승천 하실 때 곧 오시겠다는 주님은 오시지 않고 삶의 중심 이었던 예루살렘에서는 박해를 피해 떠나왔다. 계속되는 흉년에 삶은 팍팍하기만 하다. 외부에서 위협하는 핍박도 여전하다. 공동체 내부에서는 서로 원망하는 일도 생겨났다.

야고보는 이런 성도들의 삶을 너무나 잘 공감하고 있었다. 그들을 어떻게 위로해 줄 수 있을까? 믿음의 삶을 응원해 주고 싶은데 어떤 것이 좋을까? 그 고민들이 야고보서에 담겨있다.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말씀을 권면한다. 무조건 믿고 기다리라 하지 않고 "믿음의 행동, 사랑의 실천"을 권면한다. "말씀"이라는 생명의 씨앗은 반드시 싹을 틔우기 마련이니 "기다리라"고 한다. 본문에서 "기다림"이라는 단어가 애잔하게 다가온다.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주님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어떻게 "기다리며" 살아가야 할까?


1.열매를 바라보며 "길이 참아" 기다려라(7-8절)
주님의 강림을 기다리는 것은 나의 시간표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 아시는 그 때를(마 24:36) 바라보며 기다려야 한다. 인내의 동기와 에너지가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약 5:7)"

교회 공동체 안팎의 "여러가지 시험들"과 "시련들"이 끊이지 않았다. 외부에서 오는 "핍박"뿐 아니라 내부에서의 "차별"로 인한 분열의 문제도 있었다. 이런 갑갑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주님이 다시 오실 그 날을 바라보고 길이 참고 인내해야 한다. 마치 농부가 수확의 열매를 바라보고 인내하며 농사를 짓는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의 백성도 이와 같이 다시 오실 주님과 함께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성실하게 인내해야 한다. "길이 참음"을 두 번이나 반복하면서 인내의 상황이 지속될 것을 암시한다.

*신앙은 길이 참음의 시간들로 채워지는 듯 하다. 바라고 원하는 것이 제깍 제깍 이루어지는 것 보다, 믿음이 확인되고 확인 되서야 누리는 것을 여러번 경험한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현실감이 세상 속에서 점점 희미해지는 것이 두렵다.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는 마음이 희미해 질 수록 신앙이 메말라 가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 세상속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에너지가 되는 것을 역시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길이 참고 기다리는" 신앙은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사모함과 함께 간다. 나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사모하는 마음이 메말라 가지 않기를 소망한다.


2.서로 원망하지 말라(9-10절)
마지막이 가까울 수록 서로에 대하여 원망하고 책임을 묻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일어 날 것이다. 자신이 책임지려는 것 보다, 할 수만 있다면 떠넘기고 외면하는 풍조가 거세질 것이다. 내개 책임지려는 것보다 서로 책임을 묻고 원망하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이런 세상 풍조를 따르지 않아야 한다.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9절)"

"원망하다(스테나조)"는 말은 "다른 이들에게 책임을 돌리며 계속해서 불평과 불만을 쏟아낸다"는 뜻이다. 또, "서로를 향해 으르렁 거린다"는 의미도 함께 가진다.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교회는 하나되어야 한다. 그런데 교회 안에 차별의 문제뿐 아니라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불평과 불만을 쏟아 낸다는 것은 교회가 그만큼 분열되어 간다는 의미일 것이다.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교회는 믿음을 지키는 데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서로 원망하지 않는 것"부터 이다.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한 예언자들을 고난과 인내의 본보기로 삼으십시오(표새_10절)" 선지자들은 자신들의 예언에 대하여 돌멩이를 던지고, 무시하고 외면하는 그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이루어짐을 믿고 바라 보았기에, 백성들의 반응에 흔들리지 않았다. 이처럼 흔들리는 믿음의 위기 속에서 "주님 다시 오심"을 굳게 바라보고 "원망(불평과 불만)"하지 않고 "길이 참아" 기다리자...


3.주님의 자비와 긍휼을 바라보라(11절)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11절)"

끝까지 인내한 욥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알고 있고, 십자가에서 끝까지 순종하신 주님을 보고 믿었기에 하나님 나라 백성도 주님의 자비와 긍휼을 의지해야 한다.

욥이 고난 당할 때 외면하지 않으셨고, 그의 "길이 참고 기다림"에 모든 부분에서 갑절로 회복 시켜 주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믿으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미 욥, 선지자들을 앞서 이런 삶을 살게 하셨음을 상기 시키면서 이제 우리가 더욱 하나님을 의지할 것을 응원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살기 위해 고통의 시간을 이미 살아간 선진들이 있다. 히브리서는 그들을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히 12:1)"이라고 말한다. 나에게 주어진 삶도 믿음의 후손들에게 남겨질 것이다. 그때 "증인"으로 남겨져야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믿고, 오늘을 "길이 참고, 원망하지 않으며"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려야지...인내하는 자가 복 되다!


나는?
-"기다림".... 삶을 살다 보면 무수한 기다림을 경험한다. 그런게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 때 조금만 더 기다렸다면 어땠을까?"라는 후회의 순간이 꽤 많다. 이런 이불킥 할 만한 상황은 놀랍게도 "나의 성급함"으로 일어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좋게 말하면 "결단력"이지만, 그 리스크는 어떤 경우 꽤 오래 가는 것도 있었다.

-주님의 다시오심을 기다리는 "기다림"은 어떨까? ... 오히려 너무 안이하다 싶을 정도로 의식을 하지 못할 때가 많다. 의식하지 않아서 "기다림"의 믿음이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더구나 이단들의 단골 메뉴가 "계시록, 재림" 이런 것이다 보니 되려 더 무감각해 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주님의 강림을 기다리는 것 보다 이 세상에서 더 간절히 기다리는 것들이 더 많다. "성공, 명예, 재물, 취업, 승진, 성취....." 주님의 재림보다 더 간절히 이와 같은 것들을 기다린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에 필요하다고 여기고 성취 하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커질 수록, 주님의 다시오심을 망각하는 지수는 더 확고해 진다. 주님께서 경고하신 대로다. "여러분은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속에는 하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없습니다.... 이 세상도 사라지고, 이 세상의 욕망도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새번역_요일 2:15, 17)"

-기다릴 만한 것을 "길이 참으며" 제대로 기다려야지... 이 세상에서 잠깐 지나갈 욕망을 기다리다, 잊어버리면 안 되지... 그럼 그렇고 말고...

-믿음의 길에서 곤고함에 지친 이들에게 진정한 위로는 사라질 세상의 허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남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야 함을 다짐해 본다.

-한편으로는 성급함이 신앙을 망치는 경우도 있음이 생각난다. 내 자신부터 "지긋한 기다림"으로 주님 다시 오심을 바라보는 삶의 증인이 되어야 하는데... 실상 그렇지 못한 부분을 감출 수 없다. 성도들이 거쳐야 할 "성숙되어 져 가는 시간"을 기다리지 못해 섣불리 개입하고, 어리석은 가르침을 앞서 행하여서 되려 부담 되어 믿음의 생명이 꺼져 버리는 경우가 왜 없었을까? 메주를 만들자 마자 장을 담그는 식이다.

-나의 성급함이 하나님 나라 공동체의 생명의 호흡을 막고 있지는 않을지...기다림이 없으면 성숙할 수 없음을 늘 기억해야 하겠다. "좋은 장 맛을 내기 위해 충분한 발효, 꼭 필요한 시간을 느긋하게 기다려 보자... 기다림이 좋은 장맛을 가져온다. 기다림이 성숙한 신앙을 영글게 한다.

-나의 성급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돌보심을 더 신뢰해야지...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길이 참고 기다리겠습니다.
*주님, 기다림 속에서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주님, 욥과 선지자들을 대하신 주님의 긍휼과 자비도 바라봅니다.
*주님, 나의 성급함이 하나님 나라를 망치지 않도록 분별과 기다림을 주십시오. 남에게 잘 익으라고 다그치는 제가 아직도 덜 익어서 죄송합니다.

잠 20:16-30 조심하고 주의해야 할 것들...

지혜로운 이는 대인관계를 어떻게 할까? 하나님과의 관계는 또 어떻게 할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의 자세는 과연 어떤 것일까? 이와같은 주제들은 결국 조심하고 주의해야 할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지혜로운 이가 조심하고 주의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1.성급함, 조급함을 조심하라(16-20, 25절)
보증을 서는 문제는 성급하게 결정해서는 안된다. 이렇게 결정한 보증은 결국 "....자기의 (겉)옷)을 잡혀야 한다". 얼마나 성급했던 어리석은 보증인지 '외인(모르는 사람_표준새번역_16절)'의 보증도 서는 어리석은 삶은 자신의 몸이 담보가 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일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는 보증 서는 일의 위험성을 각성하고 늘 조심해야 한다.

남을 속여서 얻은 음식물이 맛이 좋다고 하지만 결국 그의 입에 모래가 씹히는 것처럼 느끼는 날이 올 것이다(17절).  속여서 자기의 즐거움을 당장 누리는 것에 취하면 고통의 시간들이 그만큼 속히 올 것을 주의하여 깨달아야 한다.

공동체와 함께 하는 것일수록 사람들의 뜻을 모으고, 함께 전략을 세워 전쟁에 임하라(18절). 독선, 독단은 공동체의 지혜를 신뢰하지 않는 불신에서 비롯된다. 나의 생각이 절대적이다는 오만과 독선은 '함께' 싸워야 할 전쟁에서조차 지혜로운 전략을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자신의 성급함이 가져오는 필패가 엄습한다.

타인을 험담하는 것과 부모를 저주하는 입을 주의해야 한다. 그런 자는 멀리해야 한다. 부모에게 한 저주가 자신에게 순식간에 들어온다. 어두운 밤중에 갑자기 등불이 꺼지는 것 처럼...(19-20절).

"경솔하게 "이것은 거룩하다" 하여 함부로 서원하여 놓고, 나중에 생각이 달라지는 것은, 사람이 걸리기 쉬운 올가미이다.(표새_25절)"

*보증, 속임, 독선, 험담, 부모저주는 조심하고 주의해야 한다.

*나의 삶이 걸리기 쉬운 올가미를 잘 분별하여 이에 걸려 들지 않는 것이 지혜다. 보증, 속임, 독선, 험담, 저주.... 살아가면서 얼마든지 나의 인생을 옭아매는, 쉽게 걸려 들 수 있는 올무들이다. 조심하고 주의해야 한다.

2.한결 같아라(22절)
지혜로운 이는 하나님께 대하여 늘 신실하게 한결같다. "악을 갚겠다" 하지 말아라. 주님을 기다리면, 그분이 너를 구원하신다.(표새_22절)"

누군가에게 고통을 당할 때, 속임을 당하고, 험담을 당하며, 저주를 당할 때 그 마음은 참담하기 그지 없다. 시간이 지나면 진실은 드러나겠지 하며 애써 마음을 진정 시키지만, 한계선에 다다르면 마음은 요동 친다. 가만 있으면 바보가 되는 것 같다. 분노가 표출되고 맞서 싸우기를 지체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지혜자는 이런 나의 힘, 나의 분노로 고통스러운 일을 맞서지 말라 하신다. "기다린다(카봐)"는 "기대하고 바라본다"는 의미다. 억울한 그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의 판단과 보응"을 기대하고 바라보라는 것이다. "사람의 발걸음은 주님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겠느냐!(표새_24절)"

하나님이 심판자, 삶의 길의 인도자 이시기에 자칫 나의 감정에 치우쳐 내가 당한 악보다 더 큰 죄악을 저지를 수 있기에... 완전하신 하나님의 공의로움을 기대하고 바라보며 "맡기는" 신실함이 한결 같아야 한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공의로우심에 대한 신뢰를 "한결같이" 유지해야 한다. 나의 한결같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는 내 힘으로 해결하려는 성금함과 조급함을 조심하고 주의해야 한다.


나는?
-나는 참 성급한 부분이 많다. 그래서 후회하게 된 순간들도 많았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런 성급함이 무수한 연단의 기회들을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다리는 믿음"의 마음으로 갈고 닦여 졌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성급하다. 늘 조심하고 주의해야 한다.

-특히 사람들의 말(험담이든지, 칭찬이든지)에 성급한 행동과 결정들을 하는 경우가 참 많았다. 그러다 보니 편파적인 결정과 조치들을 어리숙하게 남발했다. 그러면서 일부 지체들은 마음의 상처를 입고 힘들어 했다. 여전히 그 상처가 치유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얼마나 후회 했는지 모른다. 그런 고통의 기억들이 이제는 균형잡힌 들음, 판단을 좀더 주의깊게 더 주의깊게 하려는 모습으로 빚어졌다고 여기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여전히 성급하다.

-그래서 오늘 말씀 중에 "여호와를 기다리라(22절)" 말씀이 참 감동이 된다. 기다리면 구원을 베푸신다. 그 구원은 내가 원하는 때가 아닌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이루시는 구원의 때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에 대한 굳건한 신뢰를 늘 갈망해야 한다. "여호와를 기디리라"


*주님, 성급하고 조급함 마음이 들 때 완전하신 구원의 하나님을 기다리게 하소서..
*주님, 조심하고 주의해야 할 것을 분별하는 지혜로 살게 하소서.

jonghong kim
퍼온 글

지은네 가정모임?

jonghong kim 멋져용!!! 굿! 굿!!

jonghong kim
퍼온 글

0515 더함공동체 리더모임!!
#더함#리더모임

박민지 👍👍👍

Jihee Hwang 좋으다♡♡♡

김이랑 요거 괜찮당 😍